산촌민박 꽃별길새

산촌민박 꽃별길새 소박한 농가민박, 소박한 여행자를 위한 지리산 산촌민박 페이?

긴급공지“안녕하세요. 지리산 입니다. 오늘부터 4일까지 3박4일 우리집을 예약하셨습니다. 도착예정시간을 알려주시면 반가이 맞이하겠습니다.”오늘 예약한 손님께 이와 같이 문자를 보내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01/05/2025

긴급공지

“안녕하세요. 지리산 입니다. 오늘부터 4일까지 3박4일 우리집을 예약하셨습니다. 도착예정시간을 알려주시면 반가이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예약한 손님께 이와 같이 문자를 보내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깜빡하고 있었어요. 못가서 미안해요.”

어이구야, 이를 어째!
우리는 예약금도 받지 않으니 위약이며 환불 같은 규정도 없다.
사실 5월1일부터 토요일까지 빈방 있느냐고 문의한 사람이 열명도 넘는데 좀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5원1일 오늘부터 내일 모레 사이 산촌민박 이용하실 페친께서는 연락주세요.
010-2557-5882
2인~4인가족이 쓰실 수 있는 방입니다. 이용하실 날짜를 알려주세요. 산나물 푸짐한 봄 산골밥상 차려놓고 기다립니다. 선착순으로 받습니다.^^

지금 나는 뒷산에서 열심히 산나물 뜯고 있어요. 저녁반찬용으로…^^

"우리집 밥값을 좀 올려야지 않겠어요?"밥상머리에서 보름이가 말을 꺼냈다. 사실 아내와 나도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내가 농사짓고 찬꺼리를 생산한다해도 한계가 있었다. 시장에서 사와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4/02/2025

"우리집 밥값을 좀 올려야지 않겠어요?"
밥상머리에서 보름이가 말을 꺼냈다. 사실 아내와 나도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내가 농사짓고 찬꺼리를 생산한다해도 한계가 있었다. 시장에서 사와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장날 파래 3천원 어치 달랬다가 '삼천 원 어치는 못 판다.'는 말에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 밥값도 밥값이지만 방값도 생각해 봐야해."
휘근이가 한 술 더 떴다.
"요즘 한 방에 넷이나 다섯씩 받는 민박이 어딧어. 에어비엔비에 등록된 방은 무조건 둘이더라고. 저 너머 민박집도 방 하나에 둘씩만 받는다고."
"그래요. 어머니. 방값을 올려받기가 뭐하면 이용자 수를 줄이고 추가되는 인원에 추가금액을 받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건 안 돼."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그건 우리집을 찾는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한 가족이 다섯이라고 해봐. 셋이 적정인원이라고 둘에 대해 추가금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몰인정적이냐고."
그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밥값에 대해서는 아내도 많이 망설이는 모양이다. 모두들 아내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그대로 해야겠다. 세상이 먹고 살기 어렵다는데 밑지지 않는다면 굳이 올려야할 이유가 없지."

사실 나는 우리 민박집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 이처럼 누추하고 불편한 민박집은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민박으로 사용하는 아랫채는 1945년 해방되던 해에 가옥으로 등재된 옛 시골농가다. 얇은 흙벽이어서 덭문을 해 달고 뒷벽을 겹으로 쌓아 그나마 외풍을 막았다.
방에 텔레비전도 없다. 방문이 작아 가끔 머리를 부딛는 손님도 있었다. 문지방 위에 '머리조심'이라 쓴 종잇장을 테이프로 붙여 매단 뒤에야 머리 부딛는 손님은 없다. 방 안에 화장실도 없다. 바깥에 남여로 나뉜 공용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다.
이런 집으로 민박을 하고 있으니 손님이 들면 절로 눈치가 보였다. 즐거움과 설렘으로 여행을 왔을 건데 혹시 불편해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늘 주눅 든 채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우리집을 찾는 손님은 대개 좋아했다. 아직도 세상에 이런 집이 남아있느냐는 손님에서부터 이런 방에서 자보는 게 생전 처음이라는 손님까지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그런 손님들께 방값에 요금을 추가하고 밥값을 올려받는 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겠는가.
"오늘 우리집을 이렇게나마 건사해준 것이 우리들이겠어? 우리집을 찾아주신 손님들 때문이지."
아내의 이 한마디에 모두들 머리를 숙였다.

산촌일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크고 많은 것 앞에서 망설이고 움츠리며 살아온 인생에 박수를  겨우내 텔레비전을 참 많이도 봤다. 해가 설핏해지면 방에 드러누워 ‘여섯시내고향’부터 ‘생생정보’ ‘한국기행’까지 두루 섭...
25/02/2024

산촌일기
- 우리들의 해방일지 -

크고 많은 것 앞에서 망설이고 움츠리며 살아온 인생에 박수를

겨우내 텔레비전을 참 많이도 봤다. 해가 설핏해지면 방에 드러누워 ‘여섯시내고향’부터 ‘생생정보’ ‘한국기행’까지 두루 섭렵하며 놓치지 않고 봐왔다.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아내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고향’ ‘시골’ ‘어머니’와 같은 용어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정답게 다가온다. 주로 시사프로그램이나 뉴스 정도만 봐온 내가 겪는 변화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짜임새다. 시골을 방문하고, 좋은 경치를 보여주고, 그리움을 자극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한 가지 변화가 더해진 것 같다. 그것은 집을 소개하는 꼭지가 반드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음식이 주를 이뤘다. 오죽하면 ‘먹방의 시대’라는 말이 나왔을까. 유명한 요리사에서부터 시골 할머니 밥상까지 온통 음식이야기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이 집이었다. 교외에 혹은 한적한 시골에 아름답게 지어진 집을 소개하는 내용은 이제 이런 프로그램에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새 집 앞에서 자격지심에 심통을 부리고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우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기슭에 얼추 스무 채나 되는 새 집이 들어섰다. 한옥 양옥 가리지 않고 들어섰다. 콘크리트 집 목조주택 할 것 없이 들어섰다. 남향 북향 따지지 않고 들어섰다. 산기슭을 한 바퀴 빙 돌아올라치면 마치 무슨 주택전시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우리 마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산 너머 마을엔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작은 마을을 일구었는데 으리으리한 집들로 가득 찼다. 읍내 나가는 길가엔 논밭을 밀어 새 마을을 건설한 곳이 있는데 스무나무 채나 되는 집들 가운데 똑 같이 생긴 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다 새 집 주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어쩜 이리도 집을 고급스럽게 지었을까. 어쩜 이리도 크게 지었을까. 요즘 건축자재비도 엄청 올랐다는데 건축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산골 버려진 농가주택에 들어와 해마다 집고치는 일에 매달려온 우리 입장에선 그저 신기루 같은 집이었다.
“그 집 탐나더라. 접대용 공간과 가족 공간 분리된 구조가 얼마나 좋아.”
“그 집 정말 잘 지었어. 주방 동선이 딱 맞아떨어지더라고.”
새로 지어 초대받은 집을 다녀올 때면 아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듣고 있는 나는 못내 불편했다.
“그렇게 집이 크면 하루 종일 집 치우다 볼일 다 보겠더만.”
“그게 뭐가 그리 부러워. 잔디마당 그거 얼마 뒤면 다 잡초 밭 될 걸?”
그렇잖아도 산골 옛집 장만해 들어와 갖은 고생만 안긴 탓에 괜한 꼬투리잡기에 열중하곤 했다.
자격지심에 심통을 부려보지만 부러운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저런 집을 지어 아내 앞에 내놓고 싶었다. 다락방 가지는 게 소원이라는 아내에게 전망 좋은 통 창으로 조그만 이 층을 얹어주고 싶었다. 넓은 마당에 넓은 꽃밭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언감생심. 집을 헐어 새 집을 짓지 않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하기엔 우리는 가진 밑천이 없었다.
다들 가진 돈이 참 많은가보다. 다들 돈 많이 버는 일을 했겠지. 그래도 그렇지. 나보다 나이도 한참 아랜데 어찌 저리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나? 복권에라도 당첨되었나?

막힌 벽에 창을 내고 꽃밭 가꿔 꽃을 피우며 살았지만

그러나 내가 산 세상엔 돈이 없었다. 언제나 돈 앞에서 쩔쩔 맸다. 가진 돈이 없으니 의식주가 다 곤궁했다.
아내와 결혼하고 고향집에서 독립해 세상으로 나갔을 때 우리는 13만 원을 쥐고 있었다. 첫 달 방값이 3만원이었다. 텔레비전 하나 갖추지 못한 살림살이 들이고 둘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단칸방이었다.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 틈으론 연탄가스냄새가 솔솔 들어오는 집이었다.
9급 공무원 3호봉 첫 월급은 이십오만 원쯤 되었던가? 월세 3만 원에서 월세 5만 원 방으로 이사하기까지 두 해가 걸렸고 그보다 더 넓은 방으로 다시 옮겨가기까지 두 해가 더 걸렸다. 아내는 교회 바자회장이나 사회단체에서 펼치는 재활용장터를 찾아다녔다.
여섯 해 다니던 9급 공무원을 그만두자 퇴직금이 나왔다. 나는 비로소 아내에게 분홍색 투피스 한 벌을 선물할 수 있었다. ‘논노’라고 그때 꽤 유명한 메이커 옷이었다. 아내는 이 옷을 아껴 입었다. 가족과 섬진강 봄나들이를 갈 때도 이 옷을 입었다.
이천만 원짜리 전세방을 얻기까지는 꼬박 십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어머니가 물려준 고향 갈밭들 논 네 마지기를 팔아 보태야 했다. 다섯 해 뒤 전세금 오백만 원이 올랐고 이천오백만 원으로 십년을 더 살다 마침내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스물다섯 해가 지난 뒤에야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도 집을 가질 수 있다니. 방이 세 개나 있고, 아래채도 딸려있고, 마당도 넓은 집을 가질 수 있다니.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 감사해하며 살았다. 그동안의 모든 인연을 고마워해하며 살았다. 애지중지 집을 가꾸고 돌보며 살았다. 막힌 벽에 창을 내고 꽃밭을 가꿔 사시사철 꽃을 피우며 살았다. 세상에 이만 한 집은 없을 거라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웬걸. 어느 순간 우리 집이 못마땅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너무 구식이었다. 시멘트블록으로 지은 형편없는 집이었다. 지붕도 기와무늬강철판을 덧댄 멋대가리 없는 집이었다. 앞집 뒷집 옆집처럼 방 거실 부엌 일자형으로 똑 같은 구조를 가진 구닥다리 집이었다.
돈을 벌면 이 집을 허물고 남들처럼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야지. 개성이 좔좔 흐르는 남부럽지 않은 집을 지어야지. 그때부터 새 집 지을 꿈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새 집을 지을 만큼 돈을 벌 리 만무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구렁이처럼 담을 넘어가면 그뿐인 세상

나는 늘 법과 정의와 질서에 순응하며 살았다. 볼품없는 집안, 짧은 가방끈, 가진 것 없는 인생이 법을 어기고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크고 많은 것 앞에서 움찔거리며 살았다. 그저 비좁은 셋방과 얇은 월급봉투에 만족해야 했다. 부정한 것을 앞에 두면 가슴이 뛰고 사지가 떨렸다.
오래전 일이다. 환경단체에서 일할 때였다.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이가 많은 시의원이었다. 나와는 하동 옥종 동향이라며 ‘자랑스러운 우리 후배님 우리 후배님’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환경운동 하느라 고생 많다는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저녁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며 식당을 정했다.
“자 이거 얼마 안 되는데 낼모레 명절이잖아. 고기라도 몇 근 끊어 들어가라고.”
저녁밥을 먹고 일어서는 내 호주머니에 봉투 하나를 넣어주었다. 완강히 거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우리 단체 후원금이라 생각하라는 말에 엉거주춤 받았지만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벌렁거렸다. 마치 불덩어리라도 받아든 기분이었다. 봉투엔 십만 원 권 자기앞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오자 대학생 인턴활동가가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곧 명절이니 고기라도 몇 근 끊어가’라며 그 수표를 건네 줘버렸다. 홀가분했다.
며칠 뒤 나는 지방의회 의정활동비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그 밥 한 끼와 수표 한 장은 결국 의정활동비 결정의 청탁대가였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바보’ ‘순진’ 따위의 용어는 개뿔, 세상은 그저 그렇게 구렁이처럼 담을 넘어가면 그뿐이었다.
부정이 판치고 공짜를 노리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얻은 이익으로 큰 집을 장만하고 많은 돈을 축재하는 세상이었다. 스무 해 서른 해 봉급을 고스란히 모아도 아파트 한 채 갖기 어려운 세상이라면서도 아파트는 우후죽순마냥 도시를 뒤덮었다. 아파트 분양현장은 북새통을 이뤘고 투기를 조장하는 떴다방이 들끓었다. 어디건 이익이 있다는 곳은 구더기 끓듯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휘근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학급담임이 우리 살림살이를 꽤 알법한 면식 있는 전교조 교사였다. 입학하고 며칠 지나서였다. 집으로 들어서는 내게 아내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붙여왔다.
“휘근이 담임선생님이 서류를 해오라네.”
“왜? 무슨 서류를?”
“휘근이 저소득층으로 학비면제신청할 거래. 교과서도 공짜래.”
사는 것이 궁핍하긴 했어도 세 끼 밥은 곯지 않을 살림살이였건만 우리는 거리낌 없이 서류를 준비해 담임께 보냈다. 휘근이는 저소득층 자녀로 분류되어 교과서대금과 학비를 면제받았다. 내내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우리도 다른 남들처럼 이까짓 것쯤이야 하며 살았다.

천 갈래 만 갈래 세상살이 속에서 딱 여기까지 끌고 온 내 인생

내가 너무 소심했던 탓이지. 용기가 없었던 거야. 적극성도 부족하고 창의성도 없어 큰일을 저지르지 못했던 거야. 그때 그 퇴직금으로 도시 변두리에 자투리땅이라도 조금 사두었더라면 훨씬 나아졌을 걸. 뭐가 그리 무서워서 그저 그렇게 올망졸망 살았나몰라. 이 산골에 들어와 이렇게나마 안온한 삶터를 일군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지.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잖아.
많은 돈을 가진 사람 앞에서, 크고 으리으리한 새 집을 지나며, 노동도 하지 않고 노후를 즐기는 귀촌자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사장님 얼굴이 옛날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요.”
“어르신 얼굴 피부며 혈색이 장난 아닌데요.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우리 집을 찾는 단골민박손님은 내 모습에 놀라곤 했다.
사실 그랬다. 십오륙 년 전 도시에서 살 때 거울 속 내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꺼칠꺼칠했고, 피부는 푸석푸석했고,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아내는 얼굴 좀 펴고 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는 게 곤궁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다 보니 얼굴 찡그릴 일만 겪었을 거였다.
딴엔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지. 희생이라는 용어를 달고 용맹정진 하던 시절도 있었지. 그런데 왜 그리 얼굴 찡그리며 살았을까. 마음이 편하면 몸도 고와진다는데 왜 그처럼 꺼칠꺼칠 푸석푸석한 모습이었을까. 성의를 다하지 않았거나 진심이 부족했을 거야.
그런 이유라면 저들이 가진 저 크고 많은 것 앞에서 이리 시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천 갈래 만 갈래 세상살이 속에서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을 뿐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정성과 진심을 다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제도와 질서에 순응하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크고 으리으리한 집을 가졌다고, 더 많은 재물을 가졌다고 눈꼴사납게 쳐다보는 심보를 가지고 살아서야 되나.
나는 내게 맞는 딱 그만큼을 가졌다. 딱 그만큼만 가질 삶을 살았다. 딱 그만한 집을 가졌고, 딱 그만큼의 사람을 가졌다. 여기서 더해도 덜해도 일그러진 내 표정은 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푸석푸석하고 꺼칠꺼칠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 인생이고 내가 짊어져야할 운명이다.

긴급공지합니다.우리 산촌민박 는 예약금을 미리 받지 않습니다.그래서 예약하고 해약해도 위약금 같은 것은 전혀 없지요.그러다보니 예약하고 해약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요.조금 전에도 해약연락이 문자로 왔는데 기분이 살짝...
17/07/2023

긴급공지합니다.
우리 산촌민박 는 예약금을 미리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약하고 해약해도 위약금 같은 것은 전혀 없지요.
그러다보니 예약하고 해약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요.
조금 전에도 해약연락이 문자로 왔는데 기분이 살짝 언짢기도 하네요.^^
지난 4월초에 7월23일부터 28일까지 가운데방(4인실, 산촌민박 방 3개 중 가장 인기있는 방)을 예약했는데 특별한 사유도 안 밝히며 ‘못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기간 예약문의도 많이 들어왔는데 좀 일찍 알려주셨다면 좋았을 것인데요.

이 기간동안 이 방을 쓰고 싶은 페친께서는 선착순 예약해 주세요. 1박이든 2박이든 맘대로요.
아래 블로그에서 예약하시면 된답니다.^^

[필독]산촌민박 꽃별길새 이용객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산촌민박은 정기휴일이 있습니다. 예약현황을 확인...

안녕하세요.산촌민박 지리산 꽃.별.길.새에서 소식 전합니다.산촌민박 음식담당 안주인이멀리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지난 8년간 계를 모았다고 하네요.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지인이 살고 있어큰 용기를 내었다고 합니다.여...
23/02/2023

안녕하세요.
산촌민박 지리산 꽃.별.길.새에서 소식 전합니다.
산촌민박 음식담당 안주인이
멀리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지난 8년간 계를 모았다고 하네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지인이 살고 있어
큰 용기를 내었다고 합니다.
여행기간동안 농사담당 바깥주인이
민박손님을 받으려고 음식공부를 하려는데
음식을 어설프게 내면 안 된다는 가족들 의견에
여행기간은 방만 내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는 승용차로 10분거리 이내에
많이 있으니 괜찮겠고
아침식사는 며느리가 하는 에
요깃꺼리가 몇몇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되겠네요.
직접 해결하려는 손님께 주방을 내어드리고
밑반찬도 나누어 드릴께요.
둘레길 여행자는 밑반찬으로 간소하게 차려드립니다.
여행기간은 3월20일~4월27일까지랍니다.
4월28일부터 정성 가득한 밥상을 준비할께요.
봄날이 저기 언덕을 넘어옵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우리 지리산 산촌민박 가새 단장을 마쳤습니다.작은방 앞 데크마루에 파고라형 쉼터를 만들었어요.지붕을 씌우고, 테이블을 놓았지요.여름엔 마땅히 쉴 그늘이 없었는데 이젠 완전히 해결했어요.이 쉼터에 모기장을 치고 대숲바...
19/03/2022

우리 지리산 산촌민박 가
새 단장을 마쳤습니다.
작은방 앞 데크마루에 파고라형 쉼터를 만들었어요.
지붕을 씌우고, 테이블을 놓았지요.
여름엔 마땅히 쉴 그늘이 없었는데 이젠 완전히 해결했어요.
이 쉼터에 모기장을 치고 대숲바람을 쇠고 있으면
여름이 너무너무 시원하겠지요.
그리고 고양이들 놀이터나 다름 없었던 현관 앞 마루를
작은 휴식공간으로 꾸몄어요.
지리산을 향하여 폴딩도어를 달고 자그마한 테이블도 놓았지요.
겨울이나 날씨가 쌀쌀할 때 마땅히 쉴 공간이 없었는데
이젠 햇살 잘 드는 이 공간이 쉼터가 되었어요.
고양이들 쉼터는 바깥화장실 앞 창고에 따로 마련해 주었어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
부디 몸조심들 하시고
산벚꽃이 피는 봄 어느 좋은날에 한번 찾아주세요.^^

우리 산촌민박 꽃.별.길.새 밥값은 6,000원내가 농사지은 것들을 쓴다고 하지만밥값이 자장면 값에도 못 미치다보니스무 해 궁중요리 공부로 갈고 닦은아내의 정성이 담긴 이 음식을 허투루 보기도 해요.게다가 두부 한 ...
26/10/2021

우리 산촌민박 꽃.별.길.새 밥값은 6,000원
내가 농사지은 것들을 쓴다고 하지만
밥값이 자장면 값에도 못 미치다보니
스무 해 궁중요리 공부로 갈고 닦은
아내의 정성이 담긴 이 음식을 허투루 보기도 해요.
게다가 두부 한 모 2,000원 하던 것이 3,000원
달걀 한 판 6,000원 하던 것이 9,000원
이런 상황이라 밥값에 대한 고민이 듭니다.
"밥 안 해주고 아침을 빵으로 하자."
"이왕이면 만 원으로 대폭 올리자."
가족들이 모여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보지만
"있는 찬 꺼리로 하는데 밥 가지고 그럴 거 있나."
아내가 그냥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래도 이렇게는 안 되겠기에
내년부터는 한 끼 8,000원으로 하자고
아내를 달래는데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안녕하세요.지리산 에서 알려드립니다.엊그제 우리 가족은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우리 민박집도 정기휴일을 정하자는 거였습니다.“어머니 너무 힘들어하시니 정기휴일을 정해야해요.”보름이가 단호하게 의제를 끄집어내고“맞아....
21/04/2021

안녕하세요.
지리산 에서 알려드립니다.
엊그제 우리 가족은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 민박집도 정기휴일을 정하자는 거였습니다.

“어머니 너무 힘들어하시니 정기휴일을 정해야해요.”
보름이가 단호하게 의제를 끄집어내고
“맞아. 맞아. 그래야 돼.”
휘근이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내는 우물쭈물, 나는 머뭇머뭇
아직 갚아야할 빚도 남아있고
행여 주중에만 시간이 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주 화,수요일을 정기휴일로 한다고 결론냈습니다.
우리집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흔 넘어 여든까지 오래오래 정답게 만나려면
쉼이 필요하다고 정리했지요.
그래도 그날이 공휴일이거나 연휴에 이어지면
예약을 받기로 했습니다.
가족이용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방학기간 정기휴일을 잠시 멈추는 것도 생각해 보기로 하였지요.

우리 산촌민박을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쉬는 만큼 더한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있는
산촌민박이 되겠습니다.^^

이른 아침, 건너편 산등성엔 햇살이 들고마당으로 나온 암닭들 모이를 쪼고아이 둘과 함께 온 민박손님장작불 구들장 뜨끈뜨끈한 방, 늦잠을 즐기는평화로운 산촌민박입니다.바이러스시절,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방은 2개만 운영...
08/02/2021

이른 아침, 건너편 산등성엔 햇살이 들고
마당으로 나온 암닭들 모이를 쪼고
아이 둘과 함께 온 민박손님
장작불 구들장 뜨끈뜨끈한 방, 늦잠을 즐기는
평화로운 산촌민박입니다.
바이러스시절,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방은 2개만 운영하지만
그래서 더 평화로운 풍경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지푸라기 밟는 소리라도 들릴세라
걸음마저 사뿐사뿐 내딛는
산촌민박의 고요한 아침이
참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소박한 농가민박소박한 시골밥상소박한 여행자를 위한지리산 산촌민박 꽃.별.길.새가새롭게 단장했습니다.코로나 바이러스 시대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이 무거워질 때눈 덮힌 지리산 마주하면서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집소박한 여행자의...
02/02/2021

소박한 농가민박
소박한 시골밥상
소박한 여행자를 위한
지리산 산촌민박 꽃.별.길.새가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이 무거워질 때
눈 덮힌 지리산 마주하면서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집
소박한 여행자의 집으로
항상 곁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늦은 가을부터 곶감을 깎고김장을 하고메주를 쑤어 걸고화목 잔뜩 쟁여두고겨울을 맞았습니다.이번 겨울도 우리 산촌민박 꽃.별.길.새는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셔서 따뜻하고 즐거웠습니다.올해 설 연휴는 손님을 안 받기로 하고아...
21/01/2020

늦은 가을부터 곶감을 깎고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어 걸고
화목 잔뜩 쟁여두고
겨울을 맞았습니다.
이번 겨울도 우리 산촌민박 꽃.별.길.새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셔서 따뜻하고 즐거웠습니다.
올해 설 연휴는 손님을 안 받기로 하고
아내의 친정집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려 합니다.
장모님 돌아가시고
자주 찾아보지 못한 고향
아내는 벌써부터 설렘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신작로 삼거리에서 마을길로 들어서면
커다란 창고가 있고
오래 된 공덕비가 있고
어린 시절 멱감던 맑은 개울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마을
고향을 가듯
나도 덩달아 그리움에 젖습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모두들 까끔씩 고향 꿈도 꾸면서
복된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10/06/2019

Address

마천면 창원리 625
Hamyang
67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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