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4/2026
📍 26 공주의 시선 | 계룡산 동학사에서 기분 좋은 포기를 하다
백제의 시간을 빠져나와 영험하다는 계룡산 동학사 계곡으로 향합니다. 호객하는 식당 이모님들께 배가 부르다며 웃음으로 손사래를 치고, 물소리가 엉기는 숲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 동학사 계곡길 : 자아는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햇살의 각도와 그림자의 깊이가 변화무쌍합니다. 사진을 찍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면의 복잡하던 생각들도 드나들며 모양을 바꿉니다.
나를 찾는 길이라기보다는 나를 만들어 가는 길이어야겠습니다. 자아란 숨바꼭질하듯 어디 숨어있는 걸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저 계곡물처럼 휘청이며 매 순간의 이야기를 쌓아 형성해 가는 것일 테니까요.
🏮 동학사 경내 : 빽빽한 삶의 풍경을 안은 사찰
일주문을 지나 마주한 동학사는 산비탈 좁은 땅에 빽빽하게 지어져 흔한 사찰의 호젓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가올 행사로 연등까지 가득 차 분주한 풍경 속, 마치 거대한 고목 위에 위태롭고도 단단하게 의탁하고 있는 암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은선폭포 가는 길 : 적절한 핑계가 과욕을 누를 때
내친김에 은선폭포까지 가보려 했으나, 통제된 길을 우회하는 탓에 가파른 수백 개의 나무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늦은 오후, 홀로 오르는 산에서 과욕은 가장 위험한 법.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오만입니다.
그래서 코미디 같은 핑계들을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마실 물이 부족하다, 신발이 허술하다, 배터리가 없다, 폭포 하나 못 본다고 계룡산이 사라지나.'
충분한 핑계를 중얼거리며 미련 없이 돌아섭니다. 백 킬로미터 행군을 밥 먹듯 하던 옛날의 나는 없지만, 이제는 가벼운 포기에 열렬히 반색하는 두 다리가 꽤 마음에 듭니다.
올라갈 땐 물길을 거슬렀으나, 홀가분하게 내려오는 길엔 계곡물과 같은 방향으로 걷습니다. 화려한 카페 대신 차가운 생수 한 병을 사 들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짧았던 공주 여행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풍경을 읽고 시간을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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